히틀러와 전두환…독일 교회가 5·18 도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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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가장 먼저 연대한 유럽 나라, 독일

1980년 5월 22일, 독일 공영방송 NDR의 일본 특파원이었던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이 독일 방송에 전해집니다.
힌츠페터의 보도는 독일 전역을 흔들었고 베를린, 본,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 독일 주요 도시마다 교민 시위와 단식 투쟁이 들불처럼 퍼졌습니다.
당시 시위와 단식 투쟁에 참여했던 독일 교민들은 현재까지도 매년 5월이면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오월민중제'를 개최하는 등 독일에서 가장 활발히 광주와 연대한 나라로 역사를 잇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보도 하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보도 뒤에는 나치에 맞섰던 독일 교회의 '연대'가 있었습니다.
■ 히틀러에 맞선 DNA, 한국의 민주화와 공명하다
독일 개신교 교회는 1930년대 히틀러가 집권 했을 당시에 유대인 탄압에 침묵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가 침묵했을 때 일부 개신교인들이 교회의 나치화에 반대하는 교회 단체 '고백교회'를 만들었고 이들 교회는 히틀러 집권 기간 동안 모진 탄압을 견뎌야 했습니다.
한-독 교회 에큐메니컬 관계사를 연구해온 한운석 튀빙겐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펠로우는 "전두환의 독재와 폭력에 항거한 광주 시민들의 항쟁이 많은 독일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석합니다.
특히, 1970년대 유신체제부터 1980년대 군사정권 시기까지 이해학, 서남동, 안병무 등 수많은 목회자들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가 옥고를 치른 점도 독일 교회가 한국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됐습니다.
1980년 당시 독일 현지에서 독일인을 대상으로 설교를 했던 박종화 원로목사도 "전두환이 독일의 히틀러다. 당시 독일교회가 설교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냐. 지금 먼나라 한국, 광주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하면 독일인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기억합니다.
이에 더해 이영빈, 장성환 등 한인 교회 목사들도 적극적으로 교민들과 독일인들을 대상으로 광주 민중항쟁을 알렸습니다.
독일인들은 헌금을 모아 5.18을 포함해 한국 민주화운동 양심수의 가족을 지원했습니다. 또 5.18 당시 피해를 입은 광주YWCA 건물을 재건하는 데도 보탰습니다.
당시 독일 교회를 중심으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던 인적 인프라도 한몫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울 슈나이스 목사는 일본에 머물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를 빼내 교회 네트워크를 이용해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폴 슈나이스 목사의 일본인 아내와 자녀들 등 셀 수 없이 많은 목회자들의 헌신적인 조력이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영상채록 5·18] 광주 위해 국경을 넘은 기요코 슈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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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회의 연대는 신군부에 실제적이고 강한 압박이 되었습니다. 취재진이 독일 현지에서 확인한 독일 개신교 소식지를 보면, 1980년 당시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주교회의 주교였던 쿠르트 샤프 주교는 미국에 광주에서 벌어진 폭력을 용인하지 말라며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독일 교회 문서고를 꽉 채운 한국 민주화운동 자료…연구해야

취재를 위해 독일 팔츠주에 있는 팔츠주교회 문서고에 방문했습니다. 한국과 관련한 자료를 보여달라고 하자 안내받은 문서고에는 책장 한 켠이 한국 자료로 빼곡했습니다.
이중에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포함해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구명 운동, 이후 한국 양심수 석방 운동까지 독일 교회가 한국 민주주주의와 관련해 정보를 얻고, 퍼뜨리고, 연대했던 기록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귀중한 기록들은 아직 긴 잠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부 신학 연구자만이 제한적으로 해당 자료에 대해 접근하고 연구했을 뿐, 언론이나 국내 기관이 주도해 이 사료에 접근하거나 연구에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대로 된 연구나 발굴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간이 지나는 사이 역사를 증명할 당사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언론이 통제되고 통행이 막혔던 고립된 광주를 위해 종교를 넘어 힘을 보탰던 독일 교회, 그리고 수많은 종교인의 노고를 이제는 우리가 온전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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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주 기자 (hand@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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